최근 우리 사회에는 최소한의 상식과 금도라는 것이 무너져버린 느낌입니다.
아무리 국정 운영이 어려워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가 존재하는 법인데, 평화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국회와 선관위에 군경을 투입했던 행위가 그러한 ‘상식 파괴’의 극단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정치가 극단적인 탓인지 사회적으로도 흉흉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여겨왔던 현장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생명이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을 희생자 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던져주는 사회적 함의를 돌아보며,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 사회가 문제를 소모하는 방식의 구태의연함에 대해 다시한번 반성하게 됩니다.
사건 발생 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에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첫째,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여부만으로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평가할 수는 없다. 역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자주 방문한 것이 환자의 치료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일 수 있으니,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자는 뜻입니다.
둘째, 살인은 범죄자의 인격과 도덕, 성장배경, 생활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자의 정신질환 전력에 언론이 유독 주목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셋째, 정신질환을 앓은 공무원의 복직과 관련해 정신과 의사가 전적으로 그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진단서에 ‘완치’ 또는 ‘직무 수행 가능’ 여부를 명확히 기재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많은 질환이 그렇지만 정신질환은 특성상 ‘완치’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으며, 이는 의료의 본질을 왜곡하고 의료법 위반을 강요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공무원의 직무 수행 가능 여부는 독립적인 평가 기관이나 위원회를 통해 객관적으로 심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의 입장입니다.
의사회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라는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학생과 학교 관계자들은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덧붙였습니다.
사건 직후 정치권에서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있는 희생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바라는 것이 자기 이름을 딴 급조된 법안은 아닐 것입니다. 냉철히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실질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해,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한층 견고해지는 방향일 것입니다.
우려스럽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요즘 준비되고 있는 이른바 ‘하늘이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교사를 배제하는 데 대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이 자칫 정신건강 진료를 꺼리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직무 수행이 어려운 교사에게 직권 휴직을 권고하고, 휴직을 심의하는 위원회에 동료 교사와 학생, 학부모까지 포함시키는 법안 또한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도 문제가 다분합니다. 그로인해 정신건강에 문제를 느끼는 교사들이 외형적 안정감을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하고, 적절한 치료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더욱 심각한 문제를 양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울러 학생이 교사의 휴직, 복직 등 인사와 관련된 문제를 평가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 또한 있습니다.
상식과 금도를 넘어 신뢰가 무너진 사회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정신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식을 복원하고 신뢰를 재충전하는 과정이 상식과 신뢰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목적과 방향이 옳다면 수단과 방법 또한 과학적 합리성의 바탕 위에 서야 올바른 개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야든 규제, 배제, 차단의 방식으로 가시적 성과를 잠깐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상처 위에 붕대만 둘러놓고 “치료 끝났다” 자랑하는 격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해 왔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늘 양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 또한 또 하나의 규제와 배제, 차단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부족했던 정신질환자에 대한 점검과 검토, 지원 시스템을 돌아보고, 예산과 정책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사건이 정신질환과 관련된 문제인지도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과감히 문제를 세상에 제기하고 해결을 향해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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